티스토리 뷰

소개


리버풀은 잉글랜드 머지사이드 주에 리버풀을 연고지에 둔 프리미어리그 소속 축구 팀이다.


상징


리버풀의 클럽 상징은 붉은색이다. 100년이 넘는 역사 대대분 동안 그러했으나 19세기 말 갓 창단시에는 에버튼과 유사한 파랑-흰색 디자인을 따랐다. 물론 이 유니폼은 오래 있지 않아 폐기되었고, 1894년에 리버풀시의 상징색인 빨강색을 처음으로 유니폼에 사용하였다. 이때부터 1964년까지 맨유의 유니폼과 흡사하다고 느낄 수 있는 빨강 흰색의 디자인을 고수하던 리버풀은 당시 감독이였던 빌 샹클리의 제안으로 하의와 스타킹까지 빨강색으로 바꿨다.




빌샹클리는 온몸을 빨간색으로 바꾸는 것이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샹클리는 어느날 드레싱룸으로 들어와서 로니 예츠에게 붉은색 하의 한 벌을 건네며 이거 한번 입어보고 어떤지 보자 라고 했다. 그러고선 오 로니 좋은데 놀라워 키가 커보이는군 그 모습을 본 내가 제안했지 아예 양말도 붉은 색으로 바꾸죠? 모두 붉은색으로 하고 나갑시다. 샹클리는 찬성했고 그것이 리버풀의 새로운 상징이 되는 순간이었다. - 이안 세인트 존 - 그의 자저선에서


리버풀은 유니폼 상의에 메인 스폰서를 부착하고 경기에 나선 최초의 잉글랜드 클럽이다. 1979년 히타치와 계약을 맺으면서이다. 그 후 리버풀은 크라운 페인트, 칼스버그 등을 거치면서 지금은 가슴에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로고를 새기고 있다. 한편 리버풀은 잉글랜드 프로축구에서 가장 오래된 계약을 했었는데 1992년부터 2011년까지 칼스버그와의 스폰십 계약이었다.


공식 구단 윗면 엠블럼에는 유명한 YNWA 문구가, 방패 안에는 리버풀 시의 문장인 리버버브가 자리해 있으며 양쪽의 불꽃은 안필드의 밖에 위치한 힐스보로 참사 기념비에 있는 성화를 표현한 것이다.




YNWA ( You'll Never Walk Alone )


원래 1945년 로저스 앤 해머스타인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회전목마에 등장한 곡이다. 그 후 여러 가수 기획사들에 불렸으나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버전은 1963년에 발행된 Gerry and peacemakers의 You'll Never Walk Alone 이다. 제목과 가사가 어떤 어려울 때라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감동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발매 된 후 리버풀 팬에게 많이 불렸고 리버풀의 응원가가 되었다.


또한 다른 응원가들과는 달리 대중 음악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지역성이 전혀 없어 다른 클럽이 써도 가사가 전혀 문제가 안된다. 실제로 리버풀의 한정된 응원가가 아니라는 것이 재밌는 점이다. 셀틱 FC, 도르트문트, 뮌헨글라드바흐, 마인츠, 호펜하임, FC 도쿄 등 다수의 클럽들이 YNMA 응원가를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이런 클럽들과 프리시즌에 경기를 가질 경우에는 사이좋게 YNMA 문구를 사용하며 팬들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 도르트문트와의 유로파리그 8강전에서는 양팀 팬들이 YNMA를 합창하는 진풍경이 펼쳐졌었다.




리버풀 특징


2000년대 중반 맨유 첼시 아스날과 함께 빅4로 불리며 우승권과는 멀지만 3~4위를 전전했고 알론소의 이적 후에는 6~8위를 맴돌며 유로파리그도 확실히 나가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마지막 리그 우승은 1889~90 시즌으로 이후 리그 우승이 없으며 프리미어리그 출범 후에는 맨유에게 최다 우승 타이틀마저 뺏기고 말았다. 과거에는 통합 20년 정도를 2부리그에서 놀았는데 이것 때문에 빅4에 5번 강등된 팀이랑 같이 있는게 챙피하다고 디스를 당했다.


2009~10 시즌부터는 유로파도 턱없는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우승후보가 아닌 웃음후보라고 조롱당하기 시작했다. 리버풀은 승점은 얻기 힘드니 웃음한번 주면 승점 1점을 준다고 드립도 나왔다.


이런 상황 때문에 예능풀이라고 까이다가 2013~14시즌 들어 갑자기 챔스및 우승경쟁을 치열하게 하는 이변을 보여주었다. 13~14시즌 34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팀의 공격수 다니엘 스터리지와 루이스 수아레즈가 리그 득점 2, 1 위를 나란 히 달리고 있었으며 우승경쟁팀인 첼시와 맨시티를 안필드에서 잡으며 4경기를 남겨둔 채 강력한 우승후보로 리그를 마무리 하고 있었다. 또한 10연승을 하면서 기록도 갈아치우고 있었고 아스날을 5대1 올드트래포드에서 맨유를 3대0 으로 이겼고 토트넘에게는 2경기 9대0이라는 스코어로 우승에 다가섰으나 스티븐 제라드가 첼시전에서 치명적인 실책으로 맨시티에게 우승을 넘겨주었다. 비기기만 해도 우승에 다가 설 수 있었지만 패배하고 말았다.


그리고 2014~15시즌 13~14시즌 돌풍을 일으켰던 소튼에서 리키 램버트, 아담 랄라나, 데얀 로브렌을 영입했고 밀란에서 발로텔리를 세비야에서 모레노 레버쿠젠에서 엠레 찬 벤피카에서 마르코비치를 영입하는 등 수아레즈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2014년 11월 25일 기준으로 리그에서 11위로 심각한 부진을 겪고 있다. 1차적으로는 수아레즈의 공백과 공격진들의 문제도 있으나 로저스 감독의 전술도 비판을 받았다. 알론소가 팔고 몰락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2015~16 시즌 로저스 감독이 리그 8라운드만에 경질되었고 클롭감독이 리버풀의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최종 순위는 8위로 마감하였다.




리버풀의 부진원인


정통 스트라이커가 없기 때문에 괜찮은 정통 스트라이커만 데려와도 희한할 정도로 조용해진다. 2006~07 시즌 팀의 득점력 강화를 위해 페예노르트에서 물이 올라있던 카윗을 영입하였고 카윗의 활동량과 팀플레이는 환상적이였으나 정작 득점력이 저조하는 바람에 다음 시즌 이적시장에서 페르난도 토레스를 아틀레티고 마드리드에서 거액을 주고 영입하였다. 하지만 토레스를 영입하기 위해 벨라미,시세,곤살레스, 가르시아 등 주전급 자원을 여러명 이적시켰고 경쟁을 하던 맨유 첼시 아스날에 비해 얇은 스쿼드를 구축하게 되었다.


그리고 야심차게 토트넘에서 로비킨을 데려왔으나 6개월만에 재판매 되었고 리에라 도세나 등의 영입도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뒤 알론소와 마스체라노의 이적으로 생긴 공백을 폴센, 메이렐레스, 아퀼라니 등을 영입하며 메꾸어 보려고 했으나 실패하였고 메이렐레스는 밥값을 했으나 1년뒤 첼시로 이적하였다.


이후 토레스가 5000만 파운드로 첼시로 떠났고 리버풀의 탁월한 선택은 뉴캐슬의 앤디 캐롤에게 3500만 파운드를 쏟아 부었고 처참한 실패였다. 또한 찰리아담, 다우닝을 영입했으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채 방출되고 말았다. 그나마 헨더슨이 뒤늦게 기량이 좋아졌으며 아약스에서 2650만 파운드에 영입한 수아레즈가 월드 클래스 기량을 보여주며 부활하는 듯 하였으나 수아레즈가 떠난 후 발로텔리는 폭망하며 지지부진한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다른 중소팀의 에이스들을 영입해서 월드클래스로 만들어내며 성적을 올리지만 에이스가 떠나면 폭망하는 패턴이 유지되고 있다. 매시즌 시작 후 10라운드가 지나면 이적생들의 순위가 발표되는데 리버풀은 워스트가 꼭 1~2명이 있다.


최근 15~16시즌에는 피르미누가 워스트에 뽑히며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내었지만 클롭감독이 오면서 후반기 맹활약을 했고 로브렌 또한 적응을 마치고 수비의 핵으로 변모했다. 아쉽게도 벤테케는 기대만큼 활약을 하지 못한채 크리스탈펠리스로 떠나고 말았고 보그단 또한 폭망하였다.


리버풀의 상황은 토트넘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토트넘 역시 가레스 베일의 이적료로 엄청난 돈을 받았지만 토트넘 역시 어중간한 자원들로 베일의 공백을 막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돈만 날리고 말았다.


게다가 과거 구단주였던 톰 힉스 & 조지 질레트가 구단 운영에서 거하게 삽질을 해대니 먹튀로 끝난 것이 구단의 몰락을 가속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16~17 시즌에는 그루이차, 카리우스, 마팁을 영입했고 발로텔리와 스크르텔, 벤테케 등을 이적시키며 클롭 감독의 게겐 프레싱을 전략에 맞춰 리빌딩을 하였따.




리버풀의 별명


리버풀이 전성기였을 때에는 붉은 제국이라고도 불렸으며 최근에는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리빅아라는 별명이 가장 많이 불리고 있다.


또한 과도한 팬들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콥등이라고도 부른다.



리버풀의 The KOP


콥(KOP)이라고 불리우는 열정적인 서포터즈로 안필드를 가득 메운 콥들의 열정적인 응원은 리버풀에겐 큰 힘을, 상대편에겐 상당한 부담감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리버풀 입장에선 든든한 서포터즈이지만 영국에선 헤이첼참사로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콥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1906년 리버풀이 1부 리그 우승을 한 후 구단에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경기장 골대 뒤에 새로운 관중석의 이름이 스파이언 콥(Spion kop)으로부터 유래됐다. 스파이언 콥은 보어 전쟁때 많은 리버풀 출신 병사들이 전사한 지명인데 관중석을 만들 때 스파이언 콥이라는 이름으로 전사한 리버풀 출신 병사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붙인 이름이 지금의 콥이 되었다.
그럼 관중석 이름이 서포터즈를 지칭하게 되었느냐는 의문점이 생길것이다. 그 이유는 61~62시즌 2부리그로 강등되었던 리버풀이 우승을 하며 1부리그로 승격된 후 62~63 시즌 블랙풀과의 시즌 첫 경기를 치렀는데 이때 안필드에 최고 관중이였던 팬들 중 절반이 넘게 골대 뒤의 스탠드(Kop)모여서 리버풀을 외쳤고 누군가가 당시 최고의 인기인 비틀즈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덩달아 옆에 있던 다른 팬들도 같이 노래를 부르며 열정적으로 응원하였고 그것이 지금의 콥의 시작점이 되었다.



리버풀의 인기


잉글랜드내에서도 인기가 많지만 해외 특히 동남아 쪽에서 인기가 폭발적이다. 타이 전 총리였던 탄식이 리버풀을 사려다 실패해 맨시티를 샀던 것도 유명하며 당시 아시아 , 동남아 구단주에 대한 거부감도 서포터들이나 주주들에게 있었고 탁신의 돈이 더러운 돈으로 산다는 소식이 잉글랜드 언론을 통해 알려졌던 점이 컸다.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를 여행한 이의 경험을 보더라도 맨유보다 리버풀 서포터를 자주 만날 수 있었는데 이슬람이 상당수인 서포터들은 하필 칼스버그가 유니폼 스폰서라는 점이다. 두나라에서는 맥주 관련 광고를 규제한 탓에 판매제한이 되어 옛 칼스버그 유니폼이 아직도 나와 팔리고 있다며 불만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프리시즌에는 동남아 팀들과 많은 친선경기를 가진다.



이상으로 리버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